지난 5월, 올해의 마지막 스키를 함께했던 한왕식형님과 “노진강대장과 함께하는 시로우마다케(白馬岳, 2,932m) 산행”의 약속을 했습니다. 소생의 이름을 걸고 하는 회사의 상품인 만큼
꼭 날짜를 지켜 달라고 했고, 그 약속의 산행이 어제 막을 내렸습니다.
춘천에서 가족으로 참가하신 정형외과 원장님, 시집가서 두 아들의 엄마가 된 따님과 같이
참가하신 60대 어머니, 그리고 인생의 황금기를 즐기고 계시는
선후배님들, 모두 9명의 사무라이(侍) 등반대가 형성되었습니다. 지난
5월의 찬란하게 빛나던 하쿠바의 눈은 물로 변해서, 그들의
본향인 바다를 향해 흘러가는 나그네 인생(水生)이 되었습니다. 그 자리는 푸른 산이 대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하쿠바의
여름산은 정말 다양한 세상입니다. 백산백색(百山百色)이요 각산각양(各山各様)입니다. 높이에 따른 각자의 표현이 정말 경이롭기 짝이
없습니다.
서울에는 한강(漢江)이 한 몫을 한다면 하쿠바는 시로우마다케(白馬岳)가 그 이름을 대신합니다. 시로우마다케(白馬岳, 2,932m). 같은 白馬를 마을을 표현할 때는 “하쿠바”로, 산을 나타낼
때는 “시로우마”로 읽습니다. 그저께, 그 시로우마다케의 정상을 지나 쯔가이케(栂池) 스키장으로 하산을 시작할 무릅. 초속
25m의 강력한 바람의 무리가 밀려왔습니다. 지금까지 만난
적이 없는 아주 고약한 녀석입니다. 바람은 언제나 새로운 것을 일으키고 지나갑니다. 먼저, 생각을 일으키고 지나갑니다.
이 산행을 계속 진행해야 하나…? 하쿠바 오오이케(大池) 산장까지 하산하는 동안 끊임없이 몸의 중심을 흔들고 마음의 혼란을 일으키며 지나갑니다. 바람은 지구의 자전으로 일어나는 운동일 뿐인데 생각의 바람은 생성되었다가 소멸되기를 반복합니다. 그 많은 생각 중에 하나를 잡아서, 그 이유를 모든 사람 앞에서
회개하고자 합니다.
시로우마다케의
능선과 능선 사이의 골짜기는 바람이 지나는 길목입니다. 그 바람(風)의 길(道)인 하쿠바에 15년을 보내는 동안. 욕망의 베낭과 바람이 만났습니다. 어깨의 베낭끈이 바람과 비를 만나면 사람의 채찍으로 변합니다. 온
몸을 포장한 값비싼 등산복이 바람을 만나면 인생의 몽둥이가 됩니다. 어깨끈 채찍이 얼굴을 때리고 물질의
몽둥이가 휘두르는 압박에 혼이 빠질 지경이었습니다. 나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가두지
못하는 터진 웅덩이에 불과했습니다.(렘2:13) 하쿠바는
나와 바람이 만나서 싸운 땅입니다. 고난의 광야입니다. 내가
체험한 세계를 계속 누리고자 했던 장소입니다. 꽃 한송이만도 못한 솔로몬의 모든 영광을 나는 이곳에서
꿈꾸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살아 있음에 감사하기 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정상 정복(Peak Experience)의 기쁨을 더 누리고 싶어 했던 탐욕의 땅이었습니다. 그 탐욕이 장성해서 죄가 되고 말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바람길(風道)을 지나가는 바람과 같은 나그네에 불과합니다. 영원히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정상 정복의 기쁨도, 그리고 산행대장이라는 찌질한 권력도 무엇을 이기지 못합니까? 바람을
이기지 못합니다. 죽음을 이기지 못합니다. 죽음을 이기지
못할 뿐 아니라 세월을 이기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지혜의 영이 없는 인간은 다시 썩어질 것에 모든 것을 투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바로 내가 만든 탐욕의 신이 나의 눈과 마음을 가리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직업이나 그 무엇도 나의 생명이나 정체성이 되어서는
안 됨을 지나가는 바람을 통해 깨닫게 하는 산행이었습니다. 이 깨달음을 함께 산행하신 모든 분들에게
올립니다.